나예림의 투박한 생각일기

가끔은 조금 돌아서 가는 길

울림소리 2025. 4. 1. 16:31

스쿠버 다이빙을 하면

다이버들끼리는 늘 이렇게 묻는다.

“오늘 시야 잘 나와?” “시야 잘 터져?”

그 말은 곧, 오늘은 물속이 얼마나 잘 보이냐는 뜻이다.

시야가 잘 나온 날은 바닷속 풍경이 맑고 멀리까지 보인다.

물고기도, 지형도, 햇빛도 눈에 다 들어온다.

그런데 시야가 흐린 날은 무섭다.

바로 앞도 보이지 않고,

불안감과 공포가 물처럼 가슴 안으로 밀려온다.

물속에서는 그렇게 애써 시야를 확보하려고 하면서도,

현실에선 그걸 자주 잊고 산다.

고개만 들면 보이는 하늘조차 바라보지 않고,

손에 든 화면만 들여다보며 하루를 살아간다.

서울에서 바쁘게 지낼 때면

하루 종일 아래만 본다.

바닥, 핸드폰, 쌓여 있는 일들.

내 앞만 보기에도 벅차고 숨이 찬다.

그런데 본가에 내려가면

나는 자주 하늘을 본다.

정해진 일정도 없고,

조급한 마음도 덜할 때,

고개를 들면 파란 하늘이 펼쳐져 있다.

어릴 적에는

자연스럽게 그렇게 살았다.

오늘 하늘은 무슨 색인지,

길가 풀꽃은 어떻게 피었는지,

지나는 길에 바람이 어떻게 불었는지가 중요했다.

친구들과는 곧장 집에 가지 않고

여기저기 들렀다가 천천히 걸어가곤 했다.

세상은 사방에 열려 있었고,

나는 그 속을 흥미롭게 바라보며 살았다.

지금은 어쩐지

그 열린 시야를 닫아두고 사는 것 같다.

집에 가는 길도 빠르게,

풍경도 대화도 건너뛰며

집을 향해 곧장 걸어간다.

그제야 깨닫는다.

시선이 달라지면 감정도 달라진다는 걸.

조금만 고개를 들면

하늘이 있고, 나무가 있고,

길을 걷는 사람들과 움직이는 세상이 있다.

"여기에 이런 게 있었나?" 싶은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시선을 조금만 멀리 두었을 뿐인데,

그동안 보이지 않던 것들이 하나둘 눈에 들어온다.

그러고 나면 내 마음도 조금은 덜 조급해지고,

내가 어디쯤 있는지를 다시 확인하게 된다.

그래서 요즘은 의식적으로라도

조금 더 멀리, 조금 더 넓게 바라보려고 한다.

앞만 보지 않고,

주위도 가끔씩 둘러보려고 한다.

가족도, 오랜 친구도

지나치듯 놓치고 있진 않았는지 돌아보려 한다.

모든 걸 잘 챙기진 못해도,

마음만은 여유롭게 둘러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세상도, 사람도, 그리고 나 자신도.

가끔은 고개를 들어,

조금 더 먼 곳을 바라보자.

투박한 생각 일기_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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