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5

밤에야 비로소 생각나는 사람들

나는 원래도 생각이 많은 편인데,밤이 되면 그 생각들이 더 커진다.몸은 피곤한데, 진짜 잠들어야 하는데마음은 온갖 생각이 마구 떠오른다.​그래서 종종 잠을 설치기도 한다.그런데 이상하게도그 시간엔 오래전 인연들이 자주 떠오른다.​사실은 이름도 모르는 사람들인데,아르바이트를 하며 스쳐 지나갔던 손님들.내가 실수했을 때 괜찮다고 웃어주던 분들.그때는 정신없어서 깊이 생각하지 못했지만,지금 돌아보면 그 따뜻함이 나를 오래도록 안아줬다.​여행을 다닐 때 도움을 주었던 현지인들도 생각난다.말은 잘 통하지 않았지만,그들이 내게 건넨 친절은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난다.바쁘게 살 땐 잊고 지냈던 얼굴들이밤이 되면 조용히 떠올라 괜히 반갑다.​어쩌면 그들은 나를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다.나에겐 또렷한 순간이그들에겐 그냥 ..

가끔은 조금 돌아서 가는 길

스쿠버 다이빙을 하면다이버들끼리는 늘 이렇게 묻는다.“오늘 시야 잘 나와?” “시야 잘 터져?”그 말은 곧, 오늘은 물속이 얼마나 잘 보이냐는 뜻이다.​시야가 잘 나온 날은 바닷속 풍경이 맑고 멀리까지 보인다.물고기도, 지형도, 햇빛도 눈에 다 들어온다.​그런데 시야가 흐린 날은 무섭다.바로 앞도 보이지 않고,불안감과 공포가 물처럼 가슴 안으로 밀려온다.​물속에서는 그렇게 애써 시야를 확보하려고 하면서도,현실에선 그걸 자주 잊고 산다.고개만 들면 보이는 하늘조차 바라보지 않고,손에 든 화면만 들여다보며 하루를 살아간다.​서울에서 바쁘게 지낼 때면하루 종일 아래만 본다.바닥, 핸드폰, 쌓여 있는 일들.내 앞만 보기에도 벅차고 숨이 찬다.​그런데 본가에 내려가면나는 자주 하늘을 본다.정해진 일정도 없고,조급..

그럭저럭 괜찮아지는 순간

요즘은 멋진 취미들이 참 많다.골프나 서핑, 멋진 카페 투어 같은 것들.시간을 꽤 근사하게 쓰게 하는 취미들이다.​나도 이것저것 취미가 많은 편이다.그런데 그 많은 취미들 사이에서내가 가장 좋아하는 건, 어떻게 보면 조금 촌스럽다.날씨 좋은 날, 햇볕 드는 곳에 가만히 앉아 있는 일.​장비도 필요 없고, 기록을 낼 필요도 없고, 잘해야 한다는 부담도 없다.그저 따뜻한 자리를 하나 찾아 조용히 앉기만 하면 된다.가끔은 시골 본가에 내려가 마당에 의자 하나 놓고 앉는다.​선선한 바람이 다가오고, 햇볕이 얼굴에 느껴진다.햇볕은 그냥 거기 있을 뿐인데, 어느새 내 마음이 느긋해진다.​햇볕을 쬔다고 해서 특별한 일이 일어나는 건 아니다.엄청난 재미가 있는 것도 아니고, 신이 나는 것도 아닌데,이상하게도 그 시간을..

밀려드는 시간, 지워지는 나_드라마 '폭싹 속았수다'를 보고나서

나는 종교를 믿지 않는다.신이 세상을 창조했다거나, 어떤 신의 뜻대로 내 삶이 흐른다고 믿지 않는다.하지만 나는 매일 시간을 느낀다.그리고 그 시간의 흐름 속에서 무력함과 경외를 동시에 경험한다.​우리는 시간 속에 산다.시간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우리의 몸을 늙게 하고, 관계를 바꾸고, 기억을 흐리게 만든다.사랑도 상처도 모두 시간에 감긴다.그 신비한 흐름 앞에서,사람들은 종종 신을 찾는다.혹은 시간을 읽을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을.​무당이나 점쟁이, 신점을 보는 사람들.그들은 어쩌면 우리가 접근하지 못하는더 높은 차원의 시간,그 흐름의 패턴을 감지하는 이들인지도 모른다.사실, 우리가 그들에게 묻는 건 거의 항상시간에 관한 질문이다.​“앞으로 어떻게 될까요?”“이 일이 언제 끝날까요?”“그 사람은 다시..

서평 01. Alone - 줌파 라히리 외 21명 지음

'외로움'이라는 감정에 대한 솔직하고 담백한 이야기들기억이 나지 않지만 누군가의 추천을 받아서 우연히 알게 된 책이다. 고등학교 3학년인 19살부터 혼자 살기 시작해서 벌써 자취 13년 차가 되었다. 사실 외롭다는 느낌을 정확히 몰랐다. 그냥 혼자라서 심심한 줄 알았고, 공허한 줄 알았고, 우울한 줄 알았다. 그러다 어느 날 갑자기 깨달았는데, 내가 집에 혼자 있을 때 간간이 느끼는 뭐라 표현할 수 없는 그 기분이 외로움이었다. 그 감정에 대해 깊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고 꽤나 자주 느끼는 감정인데 딱히 타인과 이에 대해 자세히 이야기해본 적은 없었다. 그래서 다른 이들의 외로움은 어떤지 알고 싶어서 읽게 되었다.사진 출처 : 교보문고 홈페이지추억이란 누군가와 함께 나눌 때 가장 소중하다고 흔히들 말하지..